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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산책

첫사랑 바둑이

by 테뉴스 2022.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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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첫날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두 모였다. 반배정이라 학년별로 요란했다. 지금까지 이런 걸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몇 사람이 불렸을까? 맥없이 기다리고 있는데 바둑무늬 원피스에 어께 끈이 있는 단정한 옷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그리고 빛난 얼굴은 나중에 보였다. 깨끗하고 갸름했다. 약간 겁먹은 눈을 하고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데 숨을 잠시 멈추고 침을 꿀꺽 삼키다 들키지 않으려 얼굴을 다른 곳으로 핵 돌려버렸다. 꾀죄죄한 우리 족속과는 차원이 달랐다.  어느 도회지에서 전학온 게 분명했다. 한 학년에 두 반이 전부라서 한번은 1반을 한번은 2반을, 네 번을 반복했기에 오가면서 얼굴을 아는 것은 당연했다.

우리집은 정읍도 되고 부안도 되었다. 방이 4개가 ㄱ자로 배치되었는데 ㄱ자의 가로로 2, 세로로 2방이다. 가로는 정읍이고 세로는 부안이었다.  깡촌인데도 초등학교가 집 근처에 있는게 우리 마을 친구들에게는 행운이다. 학교로 가는 사거리에 과자가게, 담배가게, 약방, 방앗간이 자리했다. 우리집은 과자가게였다. 관사에 사시던 선생님들도 저녁에 가끔 들르곤 했는데 술도 팔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술을 좋아하신 선생님이 한 분이 있었는데 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할 때가 많았는데 모두 내 몫이었다. 무슨 의무감이 생겼는지 혼자는 안되니 주위에 놀고 있는 또래 친구들과 그 선생님을 관사로 부축하여 데려다 주곤 했다. 거리가 곧장 가면 5분도 안걸리는데 1시간 이상이 걸렸다. 분명히 갈지자로 걸으면서도 제대로 걸을 수 있다면서 화를 버럭내고 이성잃은 어른한데 그냥 맞기도 했다. 헛방들이 많아 거의 피할수 있었지만 갑자기 제대로 들어올 때가 있다.  그때는 내가 먼저 주저앉고 싶었다. 그래도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뿌듯한 뭔가가 용솟음쳤다.

언제부터 인가 그 애는바둑이로 불렸다. 나는 바둑이로 불려지는 것을 싫어할까 봐 그 별명이 좋았지만 한 번도 부르지는 않았다. 친구들은 잘도 불렀다. 어느 여름 교복을 입고 친한 친구와 집 앞을 지나가는데 멀리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왜 하필이면 내가 그 애를 보게 되었을까?’ 교복입은 모습이 바둑무늬의 옷과는 사뭇 달랐다. 이번에도 이름도 별명도 부를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전근으로 서울로 전학을 갔다는 것을 6학년 끝쯤 에야 알았다. 그 전까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해 여름 방학에 교실 하나를 빌려 주산학원을 한다는 소식과 함께 그 애도 한다고 들렸다. 그 애가 아니라면 소식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철없이 돈생각은 안하고 어머니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버린 학원비를 주라고 무작정 졸랐다. 때 마침 돈이 있었는지 용케도 허락을 받았다. 마음이 부픈 첫날 그 애는 보이지 않았다. 방학이 끝나고도 더이상 학교에서도 볼 수가 없었다.

나도 중1을 마치고 서울로 전학을 왔다. 이제는 그 애와 같은 서울에서 살고 있어서 금방이라도 만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학교는 동대문운동장 옆에 있었다. 버스노선도 많지 않고 전철도 1호선만 있어서 걸어서 다녔다. 집은 용두동이었는데 학교까지 걸어서 1시간 정도 걸렸지만 실제로 이보다 훨씬 많이 걸린다. 학교를 갈 때는 친구의 집들을 들러 같이 갔기때문이고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는 동대문을 지나 헌책방들, 시장통을 지나야 집에 오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늘 많은 책과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어 부자가 된 듯했고 마음도 활기찼다. 구경거리 한 두개만 보면 1시간은 훌쩍 넘어버린다. "애들을 가라" 말이 나오기전까지는 볼 수 있었다. 길 거리리에 바둑무늬의 강아지들이 유난히 많이 보였다.  

각 대학은 모두 병영훈련을 거부하자는 걸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사이 훈련 마지막날 회식 때 몇명이 단상에 올랐다 내려왔다.

난 대통령이 꿈이야.”

시끄럽던 주위가 조용해지고 모든 눈들이 단상에 집중되었다..

초등학교 친구였다.  똘망하던 그 친구한테 그 애의 연락처를 받았다. 그동안 나만 몰랐던 걸까? 허탈한 마음보다는 만날 수 있다는 마음이 앞섰다. 일주일의 훈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가장 먼저 보이는 공중전화 박스로 들어갔다.

어떻게 얘기할까?’  머리가 복잡했다.

어느새 전화번호의 끝 번호를 돌리며 숨을 한번 고르고 있는데 연결되어 깜짝 놀라면서 침을 삼켰다.

여보세요~”

초등학교 친구 K인데요. J 집에 있어요?”

“JY 재수학원에 다니고 있어, 공부해야 하니까 내년에 전화해~”

알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약간 퉁명함이 묻어 있어 더 얘기를 이어 갈 수 가 없었다.

정확한 학원을 듣지 못했지만 다음날 영등포 학원가를 헤맸다. 학원이 한 두개 있는 줄만 알았는데 가보니 학원들이 즐비했다.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왔으니 몇개 학원을 들어가봤다. 여기 재수생들은 대학에 들어가려고 여기에 있지만 대학생인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나도 전공이 내키지 않아서 재수하고 싶었지만 형편상 못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때 언젠가 동네 친구들과 동네에 놀러 적이 있었다. 집이 상당히 컸다. 가까이서도 있는 작은 집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너무나 커서 기가 눌려 보지도 만나보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왔다. 오가다 있는 동네에 사는 다른 친구들이 부럽다는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녀와 서울에서 처음으로 만난 것은 그녀가 대학시험을 치루고 난 어느 날이었다.

시험때는 언제나 추웠다. 교문앞에서 그녀느 기다리고 있었고 난 학교안에서 걸어 나왔다. 긴치마를 입고 있었다. 많이 추워보었다. 어떻게 인사했는지도 기억이 없다. 이제 곧 대학생이 될 그녀한테 자랑삼아 도움이 될만한 대학생활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지난 1년동안 미팅을 몇 번 경험했다고 그 애의 모습이 촌스러워 보였다. 초등학교 5학년 운동장에서 처음 봤을 때 모습이 지금과 오버랩되었다..

영장이 나왔다고 하니 그녀는 3일을 온전히 나에게 내어 주었다. 난 그 시간들을 어떻게 쓸 준비가 되지 않았고 특히 즐거운 시간을 보낼 돈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1월이라 많이 추워서 많이 떨었던 기억에 지금도 옷깃을 여미게 한다.

군대를 마치고 다시 만난 건 그녀가 졸업한 캠퍼스였다. 은행잎이 눈같이 쌓여 걷기가 무척 힘들었다. 몇일만 있으면 청소할 엄두가 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청소해도 내일 또 쌓이는데 왜 하겠나? 명물로 만들고자 일부로 안했는지도 모른다. 은행잎이 많으니 또 압도되었다. 걸어보니 푹신해서 좋기도 했다.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내 은행잎에 대해서만 한동안 얘기를 했다. 밴치에서 한참을 듬성 듬성한 얘기들이 오갔다.

저기가 내가 공부했던 곳이야.”

내가 한번 들어가 보자고 했다. 복도로 들어서기 무섭게 찌든 담배 냄새가 거슬렸다. 하지만 어느새 그 니코틴이 온 몸에 파고들어 내 안의 니코틴과 섞이고 있었다. 친한 친구들 모두 경찰서에 다녀왔지만 난 잘도 피해 다닌 것 같다. 대학 1학년때 본 기사 얘기는 묻지 않았다. 말로는 세상 고민 떠들어대면서 행동에는 소극적이었다. 초등학교때 축구경기를 할 때도 다쳐도 병원을 갈 수 없다는 집안 형편을 알고 다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축구도 다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뛰었던 것 같다. 그렇게 중간쯤에 어정쩡하게 늘 있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매일 장식하는 1면이기에 그냥 획하고 읽어가는데도 그녀의 이름의 활자가 눈앞으로 튀어나왔다. 막 대학교에 들어가고 5월이었다. 나이, 이름, , 대학이 보였다. 신문기사는 가장 어린 나이를 두각시키려 했을 것이다. 이제 들어간 신입생인데 하필 그녀를 대표로, S대학교, 19, J00명 집시법 위반으로 체포되었다는 기사였다. 체포되었다는 기사를 봤지만 연락도 못하고 만나지도 못했다.

그녀는 출판사에 다닌다고 했다. 알아보니 편집장이 내 대학 선배였다. 졸업학기인데 취업준비는 안하고 그 출판사에 아르바이트로 일하겠다고 하니 영문도 모르는 선배는 그렇지 않았도 사람이 필요한데 잘됐다고 좋아했다. 초등학교때 그녀의 동네를 갔을때는 보지 못했는데 여기서 많이 볼 수 있으니 매일이 신났다. 이제는 그녀의 동네로 이사를 온 것 같았다. 내가 하는 일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잡지가 나오면 포장해서 배달하는 것이고 바둑이 그녀를 보는 일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때야 마음이 급했다. 대학교때 한번도 하지 않은 코딩을 하고 컴퓨터를 공부하여 컴퓨터회사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회사 들어가고 얼마 안돼 회사 근처에서 그녀를 만난 게 마지막이었다.  빨간 립스틱이 짙었다. 생경했다. 해외부서라 일본에 자주 출장을 다니면서 그녀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1년쯤인가 지났을 때 그녀의 결혼소식을 친한 친구로부터 전해 들었다.

어느 화창한 날, 부인은 마당에 있는 긴 빨랫줄에 빨래들을 널고 있고 남편은 창가에서 부인 쪽을 바라보고 있었어. 부인은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줄 알고 남편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짓는데 남편의 시선은 부인을 넘어 저 멀리를 응시하고 있는거야.” 그런 남편이 되지 말라고 그녀가 언제가 말해준 게 자꾸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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